> 일본의 근대화에 있어서의 역할

일본의 근대화에 있어서의 역할

일본의 근대화와 나가사키의 조선·석탄 산업

일본의 근대 산업의 여명기는 나가사키의 조선업과 석탄 산업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에도 막부는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 나가사키 해군 전습소를 설립. 이에 따라 배를 수리 및 건조하는 나가사키 제철소가 건설되었습니다. 또한 막부 말기의 나가사키항에서는 안세이의 개국 정책에 의해 외국선의 입항이 증가. 그 연료로서 석탄의 수요가 급속히 증가하였습니다. 나가사키의 근대화를 위한 도정은 조선업과 석탄 산업의 발전과 함께 하였습니다.

일본의 석탄 산업을 견인한 다카시마 섬

나가사키항의 개항을 계기로 증기선의 연료로서 석탄 수요가 증가하였기 때문에 1868년에 사가번과 글러버 상회가 공동 출자하여 다카시마 탄광 개발이 시작되었습니다. 외국인 기술자를 채용하였고 일본 최초의 증기기관을 동력으로 하는 권양기와 배수 펌프를 설치한 수갱은 1869년 4월에 깊이 43m에서 석탄 채굴을 시작하였고 홋케이세이갱이라고 명명되었습니다.
 1871년에 폐번치현 정책으로 사가번이 폐지된 후 1874년에 탄광 경영이 메이지 정부의 관할이 되었습니다. 그 후 고토 쇼지로에게 불하되어 1876년까지 가동했으나 바닷물이 유입되어 폐갱되었습니다.
 홋케이세이갱은 일본 최초로 외국 자본과 외국 기술이 적극적으로 도입된 서양식 탄광으로, 이 지역에 도입된 석탄 생산 기술은 그 후 하시마 탄광을 비롯하여 지쿠호와 미이케 탄광 등에 전수되어 일본의 탄광 개발의 발전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하시마 섬으로

다카시마 섬에서 일본 최초로 증기기관을 사용한 수갱인 다카시마 탄광(홋케이세이갱)이 탄생하여 일본 탄광의 근대화를 선도했던 기술은 근접한 하시마 섬 탄광으로 계승됩니다. 하시마 섬의 개발에 의해 발전된 기술은 메이지시대 전기까지의 매우 짧은 기간 동안 서양의 기술 및 기계를 도입하여 일본의 독자적인 석탄광업의 기반을 구축하는데 크게 공헌하는 동시에, 산출된 양질의 석탄은 제철용 원료탄으로서 야하타 제철소에 공급되는 등 제철·제강·조선 분야의 근대화에 공헌합니다.

나가사키 시내에 위치한 근대화 유산

회색 테두리의 시설명을 클릭하면 설명을 볼 수 있습니다.

나가사키 조선소 구 기가타바 자료관

미쓰비시의 역사를 전하는 나가사키 조선소의 가장 오래된 건조물

조선업 형성기의 미쓰비시 합자회사 시대의 건물로 1898년에 주물 제조를 위해 목형을 제작하는 공장으로서 건설되었습니다. 건물은 목골벽돌식의 2층 구조로 1985년에 사료관으로 개장되어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공작기계(나가사키 제철소가 건설된 1857년에 네덜란드에서 수입한 ‘수삭반(竪削盤)')를 전시하는 등, 나가사키 조선소의 역사를 소개하는 전시 시설로 일반인에게 공개(사전 예약제)하고 있습니다.

[소재지 ]
나가사키현 나가사키시 아쿠노우라마치 1번 1호
[TEL]
095-828-4134(미쓰비시 중공업(주) 나가사키 조선소 사료관)※사전 예약제
[교통편]
나가사키버스:나가사키 역 앞 버스 정류장에서 다테가미, 가미노시마행 승차, 아쿠노우라 버스 정류장에서 하차, 도보 3분
나가사키 현영버스:나가사키 역 앞 버스 정류장에서 다테가미, 고자키하나구치행 승차, 아쿠노우라 버스 정류장에서 하차, 도보 3분

나가사키 조선소 자이언트 캔틸레버 크레인[비공개]

현재도 가동하는 일본 최초의 전동 크레인

조선업 형성기의 미쓰비시 합자회사 시대에 조선소의 공장 설비 전기화에 따라 일본 최초로 건설된 전동 크레인. 영국 애플비사제. 대형 선박용 장비품의 리프팅 하중에도 견뎌내는 전동 모터로 구동되는 당시의 최첨단 크레인으로, 1909년에 조선소의 기계 공장 부근의 아쿠노우라 안벽에 터빈과 보일러 등 대형 기계 선박에 대한 탑재와 양륙을 위하여 건설되었습니다. 나가사키 조선소는 그 전년도에 일본 최초의 선박용 및 육지용 증기 터빈을 제조하였습니다. 1961년에 크레인은 설치 장소 주변을 매립하여 공장을 확장함에 따라 일단 해체되어 현재 위치인 미즈노우라 안벽으로 이설되었습니다. 현재는 기계 공장에서 제조한 증기 터빈과 대형 범선용 프로펠라의 선적용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소재지 ]
나가사키현 나가사키시 아쿠노우라마치 1번 1호

※시설은 나가사키 조선소 내에 있으므로 공개하지 않습니다.

나가사키 조선소 센쇼카쿠

나가사키항을 조망하는 유서 깊은 영빈관

조선업 형성기의 미쓰비시 합자회사 시대에 제3 독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건설된 목조 2층 양관. 나가사키 조선소장 쇼다 헤이고로의 저택으로 1904년에 완성되었지만, 소장의 저택으로 사용되지 않고 영빈관이 되었습니다.
1905년, 군함 ‘지요다’의 함장인 히가시후시미노미야 요리히토 친왕이 숙박했을 당시에 ‘풍광이 수려한 경승지에 위치’한다는 의미로 센쇼카쿠로 명명되었습니다. 설계자인 소네 다쓰조는 영국인 건축가 조시아 콘도르의 제자. 센쇼카쿠는 현재도 거의 창건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영빈관으로서 진수식·인도식의 축하연회, 귀빈 접대 등에 이용되고 있습니다.

[소재지 ]
나가사키현 나가사키시 아쿠노우라마치 1번 1호

※시설은 나가사키 조선소 내에 있으므로 공개하지 않습니다.

나가사키 조선소 제3독

일본의 조선업을 지탱한 당시 동양 최대의 건조독

1905년, 조선업 형성기의 미쓰비시 합자회사 시대에 축조한 대형 건조독. 메이지시대에 제1독(1879년), 제2독(1896년), 제3독(1905년) 순으로 축조되었는데 현재 가동하고 있는 것은 제3독뿐입니다. 선박의 대형화에 따라서 제3독은 3번 확장되었습니다(1943년, 1957년, 1960년). 축조 당시에 설치된 영국 시먼스사제의 전동기로 구동되는 배수 펌프는 100년이 지난 지금도 가동하여 건조독의 기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소재지 ]
나가사키현 나가사키시 아쿠노우라마치 1번 1호

※시설은 나가사키 조선소 내에 있으므로 공개하지 않습니다.

나가사키 조선소 고스게 수선장 유구

당시의 모습이 남아 있는 일본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슬립독

고스게 수선장은 일본 최초로 증기기관을 동력으로 한 슬립독(배를 육상으로 인양하여 수리하는 독)입니다.
막부 말기 외국으로부터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하여 각 번은 적극적으로 대형 선박을 건조하거나 구입하였는데, 일본에는 배 바닥 부분을 수리할 수 있는 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사쓰마번과 스코틀랜드 출신의 토머스 블레이크 글러버 등은 1869년 1월(1868년 12월)에 일본 최초로 증기기관을 동력으로 하는 인양 장치를 구비한 수선 시설을 공동으로 축조하였습니다.

고스게 수선장의 축조는 일본인과 외국인이 최초로 합작한 사업으로 인양 장치와 레일 등 일체의 설비는 글러버가 영국에서 수입하였습니다. 또한 사쓰마번의 책임자인 고다이 사이스케(이후의 고다이 도모아쓰)는 글러버의 안내를 받아 영국에 유학을 갔던 인물입니다.
고스게 수선장 유구는 일본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벽돌 건물인 인양동을 비롯하여 인양 장치, 레일 등 주요부의 대부분이 돌담 등의 주변 지형과 함께 현존하고 있어 일본의 근대 조선 기술의 도입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유구입니다.

[소재지 ]
나가사키현 나가사키시 고스게마치
[TEL]
095-828-4111
[교통편]
JR나가사키역에서 나가사키버스[노모 반도 방면(도마치 경유) 승차] 15분, 고스게마치에서 하차, 도보 5분

구 글러버 저택

일본에 서양 기술을 알린 글러버의 비즈니스 거점

글러버 저택은 1859년에 방일한 스코틀랜드 출신의 토머스 블레이크 글러버의 저택입니다. 1863년에 강 건너편의 나가사키 제철소가 내려다 보이는 외국인 거류지에 건설되었습니다. 오우라 성당 등의 건축을 맡은 젊은 인재 고야마 히데노신이 일본의 전통 건축 기술과 영국풍의 콜로니얼 양식을 융합하여 건축한 일본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서양식 목조 건축입니다. 일본 기와와 토벽(회반죽)이 사용되었고 반원형을 그린 우진각 지붕, 포석 바닥면에 독립된 목제 원주가 있고 기둥 사이에는 받침목을 댄 아치형 교창, 마름모 모양의 격자를 낸 목조 천장을 가진 넓은 베란다가 특징입니다.

글러버는 개국한지 얼마 안된 일본으로 무기와 선박 등을 수입하고 차 등을 수출하는 등 무역상으로서 활약했을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증기기관 동력을 사용한 슬립독(slip dock)인 고스게 수선장을 사쓰마번과 공동으로 축조하는 동시에 일본 최초로 석탄 채굴에 증기기관을 도입한 다카시마 탄광을 사가번과 공동으로 개발하는 등, 서남웅번(西南雄藩·사쓰마, 조슈 등 서남지역의 강력한 번)과 협력하여 서양 기술을 도입하여 일본의 조선업과 석탄 산업의 근대화에 크게 공헌한 인물입니다. 메이지 정부는 글러버의 공적을 높게 평가하여 1908년에 훈이등욱일중광장이라는 영예로운 훈장을 수여하였습니다. ※구 글러버 저택에서 강 건너편에 위치한 나가사키 조선소의 ‘자이언트 캔틸레버 크레인’과 ‘제3 독’ 등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소재지 ]
나가사키현 나가사키시 미나미야마테 8-1
[TEL]
095-822-8223
[교통편]
노면전차:나가사키 역 앞 정류장에서 승차, 오우라텐슈도시타 정류장에서 하차, 도보 8분.
나가사키버스:나가사키 역 앞 히가시구치 정류장에서 승차, [다가미·오히라바시행]오우라텐슈도시타 버스 정류장에서 하차, 도보 약 8분

국가 지정 사적 다카시마 탄광 유적 다카시마 홋케이세이갱 유적

나가사키항의 개항을 계기로 증기선의 연료로서 석탄 수요가 증가하였기 때문에 1868년에 사가번과 글러버 상회가 공동 출자하여 다카시마 탄광 개발이 시작되었습니다. 외국인 기술자를 채용하였고 일본 최초로 증기기관 동력을 사용한 권양기와 배수 펌프를 설치한 수갱은 1869년 4월에 깊이 43m에서 석탄 채굴을 시작하였고 홋케이세이갱이라고 명명되었습니다.
1871년에 폐번치현 정책으로 사가번이 폐지된 후 1874년에는 탄광 경영이 메이지 정부의 관할이 되었습니다. 그 후 고토 쇼지로에게 불하되어 1876년까지 가동했으나 바닷물이 유입되어 폐갱되었습니다.

홋케이세이갱은 일본 최초로 외국 자본과 외국 기술이 적극적으로 도입된 서양식 탄광으로 이 지역에 도입된 석탄 생산 기술은 그 후 하시마 섬 탄광을 비롯하여 지쿠호나 미이케 탄광 등에 전수되어 일본의 탄광 개발의 발전으로 이어졌습니다. 현재도 수갱을 비롯하여 주변의 땅속에는 당시의 유구가 양호한 상태로 남겨져 있어 초기의 근대적 탄광의 모습을 전하는 중요한 유적입니다.

[소재지 ]
나가사키시 다카시마마치 99번 1 외
[TEL]
095-896-3110(나가사키시 다카시마 행정센터)
[교통편]
도보:다카시마항 터미널에서 도보 25분
버스:다카시마항 터미널 버스 정류장에서 승차, 혼마치 정류장에서 하차, 도보 1분